2018년 1월 21일 일요일

성경이 "과학서"라고 말했는데ㅡ (재수록)





성경이 "과학서"라 함은 
과학 전문 서적이란 뜻이야 물론 아니지만
모든 말씀이 진리이므로 
진리가 과학이 아니면 무엇인가
(진화론 같은 사이비 과학은 당연히 제외하고)
현대인은 "과학이 아니면 진리가 아니라"
굳게 믿기에 이르렀으므로
성경이 과학서라고 하는 데에 하자는 없다

셩경 관련해서 "과학"이라 하는 것은
이제까지 과학계가 자연계 관찰에만 국한될 뿐
입도 뻥긋하지 못한 
그래서 이제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인해
겨우 눈을 뜰까말까 하는 초자연계를

총망라하여 일컫는 것이다


구원을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ㅡ협의(狹義)로만 알면 아주 위험한 것




광의의 기본 적인 의미를
성경이 말하고 있으니까
협의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
배도(살후 2:3)의 특징










2018년 1월 20일 토요일

요절 외우기 (1)




요절의 장절 기억하기 쉬운 힌트 일별ㅡ
생각나는 대로 이 페이지에 수록해 두겠습니다
참고 하시면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음





★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름"
10과 10ㅡ로마서

★ 히 6:6과 롬 6:6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으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
※ 이 두 구절은 상반되는 내용으로서 중요하다ㅡ6:6과 6:6 장절이 같음ㅡ로마서와 히브리서

★ 롬 14:7-9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
14=7x2ㅡ7:14가 아닌 14:7 왜냐면 7~9절로 연달아 나오니까.

★ 고후 5:15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대신하여"는 오역)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심이니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5:15ㅡ5가 둘ㅡ고후ㅡ14절은 앞 절로 기억하면 됨

(계속)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름"(롬 10:10)











"과학서"라 함은 과학 전문 서적이란 뜻이야 물론 아니지만
모든 말씀이 진리이므로 진리가 과학이 아니면 무엇인가
(진화론 같은 사이비 과학은 당연히 제외하고)
현대인은 과학이 아니면 진리가 아니라고 믿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성경이 과학서라고 하는 데에 하자가 없다
셩경 관련해서 "과학"이라 하는 것은
이제까지 과학계가 자연계 관찰에만 국한될 뿐
입도 뻥긋하지 못한 
그래서 이제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인해
겨우 눈을 뜰까말까 하는 초자연계를
총망라하여 일컫는 것이다




2018년 1월 19일 금요일

히 6:6과 롬 6:6의 차이












때문에 그리스도를 밟고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일도 가능해지는 것.
내 안의 성령께서는
오직 나와의 사랑의 삶을 위해서만 계시기 때문.
그러나 이 경우 성령을 욕되게 함이므로
영원히 속죄되지 않으니(히 6:6/10:26)
요한도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하는 것(요일 5:16).
"말로 인자를 거역함"(마 12:32)과 전혀 다른 상황. 

롬 6:6은 우리의 자아중심의 온상인 우리 육신이 척결됨이고
히 6:6은 그런 육신이 없는 아담이나 영물들이
범죄하게 되는 자아중심을 스스로 만드는 행위.
자아중심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님.
자기 부인에서 벗어나면 언제든 얼마든 
회귀하게 되는 것이 자아중심.
손바닥을 아래 위고 뒤집기 하는 것과 같음. 

그래서 바울 사도가
"내가 나의 몸을 항상 복종시킨다"고 한 것임.
이 경우 자아중심은 우리의 육체적 욕구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러함. 
고전 7장에서 살면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함"인 것. 
"주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해 드릴까"ㅡ.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기" 때문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죽든지 살든지)
주님을 기쓰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는>" 것(고후 5:9).





모든 것을 법칙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을 과학적 사고방식이라 한다








구차스럽게 이 세상 살고자 하는 욕심에
이 생명의 법칙 어기면 
영원토록 생명에서 단절될 것이니
영락없을 것이니ㅡ
각자 알아서 처신하라는 것이 성경의 추상 같은 명령이다. 
자비를 베풀 자에게는 한 없이 자비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그렇게 무자비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극(極)과 극의 대립이니까. 




언제 말해도 참신하고 즐거움이 되는 생명의 법칙을 다시 설명하면ㅡ





삶의 극대화ㅡ
이것이 생명의 법칙이 아니면 무엇인가.
나라는 개체가 있고 여럿이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면 
그 여럿을 나 자신으로 삼는 재주, 기술이 바로 생명의 법칙으로서의
'나와 너가 이루어져 한 몸을 이루는 우리'가 됨이다. 

머리를 중심으로 모두 한 몸 체제가 되면
다시 말해 내가 눈일 때 
나는 나의 눈으로서의 역할을 내 이웃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와 똑같은 원리로 입, 코 등이 나를 위하게 되니
나는 비록 일개 눈이지만 머리를 비롯해 전부가 
나 자신으로서 존재함이다. 풍성한 나ㅡ곧 대아(大我).

싸우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다투지 않고
절대적인 화평리에 그 모든 것을 내 소유로 즐기는 것.
내 이웃 또한 같은, 평균된 삶의 행복을 누림이니,  
이것이 자유, 평등이다. 
내 스스로 원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내 이웃을 사랑함이니까.
단 이 이웃은 같은 머리를 함께 공동으로 모신 
지체를 의미함은 당연하다. 

이 지체를 구성하지 못하는 국외자가 들어가는 곳이 불 못. 
생명의 극락(極樂ㅡ극한 환락)의 대칭이니까 필연적으로 
극통(極痛)의 상태일 수밖에 없어 그런 것이다. 
대칭 원리에서 이는 불가피한 것이다.